15년 전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나를 본 미국인들은 내게 항상 일본인인지 묻곤 했다. 아니라고 하면 그 다음은 중국인 인지를 물었다. 아주 가끔 한국이란 나라를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이 삼성폰을 쓴다며 신나서 보여준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생각난다. 하지만 대부분은 삼성이 한국 것이란 것도 모르던 시대였다. 삼성이란 브랜드를 외국인이 아는것만 봐도 국뽕을 느끼던 시대. 당시는 한국문화가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지 않았었다. 그래서일까 당시의 나 또한 나의 문화를 조금은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의 한국의 위상은 놀랍도록 다르다. 최근 한달가량 동안 내가 알게된 내용 네가지만 적어보겠다.
한국음식의 세계화가 유독 느껴지는 2023년
1. 한식은 건강식이라는 자연스런 인식
첫번째로 나는 넷플릭스에서 ‘음식이 나를 만든다 – 쌍둥이 실험’ 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내용이다. 이 다큐는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같은 기간 동안 채식과 육식을 하게 한 후 결과를 보는 실험이다. 여기에서 잠시 한국에 대한 단 한마디가 나왔는데 정말 놀랐다. 실험 참여자들이 직접 건강한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백인 남자가 ‘와이프와 함께 Korean rice bowl’ 도 만들어 먹었어요.’ 라고 한 단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 다큐는 한국식 밥상을 권유한 적도 없고, 한식에 대해 얘기하는 다큐도 아니었다. 그런데 ‘건강한 요리’ 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 남자는 자연스럽게 ‘Korean rice bowl’ 을 얘기하며 자신이 건강한 식사를 하고 있음을 표현하였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받아들이는 시청자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걸까. Korean rice bowl 이 무엇인지에 대한 추가 설명 또한 없었다. 마치 이탈리아의 피자, 일본의 스시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듯 말이다.
Korean rice bowl 검색시 나오는 수많은 결과
2. 2023 구글 레시피 부문 올해의 검색어 1위
두번째는 비빔밥 이다. 아니, Bibimbap 이다. 2023년 구글 레시피(요리법) 부문 올해의 검색어 1위가 무엇인지 아는가? 놀랍겠지만 바로 Bibimbap 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도대체 어떤일이 있었길래 Bibimbap 이 1위가 되었을까? 내가 첫번째로 한 생각은 ‘BTS 중 누군가가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나?’ 였다. 열심히 구글링해 보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마 유명 K-POP 가수들이 한번씩 언급은 했겠지만, 한두번 인기인이 얘기해서 확 뜬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냥 그저 그 자체로 인기가 있는것이었다. (참고로 비빔밥 검색을 많이한 나라 순서는 인도-싱가포르-스웨덴-필리핀-캐나다 이다) 나는 이런날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해보았다.
3. 미국 마트에서 날개돋친 듯 팔리는 한국 냉동김밥
세번째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유명한 ‘Kimbap 의 인기’ 이다. 미국의 마트인 Trader Joe’s 에서 판매하는 냉동김밥이 미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김밥이 맛있긴한데 한국인인 나에게도 때론 냄새가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나는 먹지 않는데, 폐쇄된 공간에서 옆사람이 김밥을 먹을 때 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밥이 미국에서 이렇게 까지 얻게 된 것일까?
좀 더 궁금해, Trader Joe’s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았다. [김밥은 일본 ‘마끼’ 와도 비슷하다. 다만, 마끼가 하나의 속재료와 식초밥에 초점을 맞춘 반면, 김밥은 참기름 밥과 다양한 속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는 내용의 설명이다. 1인 가구의 시선으로 이 냉동 김밥의 장점을 몇가지 생각해보았다.
- 냉동식품임에도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
- 채식인들도 먹을 수 있는 것
- 3.99 달러 밖에 하지 않는 것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봐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가공육 하나를 집어드는것이 다양한 채소를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느껴진 다는 것을. 트레이더조의 냉동김밥은 간편하며 자연에 가깝고 다채로운 재료의 음식이면서도 저렴하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4. 한끼 50만원에 육박해도 예약하기 어려운 한식 고급 레스토랑들
네번째는 뉴욕타임스 선정 1위 최고의 요리 옥동식 뉴욕 OKDONGSIK New York 의 돼지곰탕 이야기이다. 뉴욕 ‘한식’ 1위가 아니다. 뉴욕 전체 최고의 요리로 선정되었다. 뉴욕타임즈의 표현을 조금 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는, 하지만 힘들 때 더 땡기는’ 이다. 외국인 친구가 나의 한국적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준 것 같은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음식에 담긴 한국인의 소울까지도 세계에서 이해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봐도 될듯하다. 마치 내가 Classic 과 Soul 음악을 듣고 감명하듯 말이다.
(원문 the kind of soup you could eat every day. But it’s especially welcome on those days when you get some news you were hoping wouldn’t come 내맘대로 해석)
‘2023 뉴욕에 새로생긴 최고의 식당 12곳’ 에도 한식당 한 곳이 포함되었다. Naro 라는 곳인데 저녁 코스 가격이 20만원대임에도 사람들이 꽉꽉찬다고 한다. 이 외에도 Jungsik 정식, 아토믹스 등이 있는데 저녁 코스가 40~50 만원을 육박하지만 예약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테슬라가 고급 스포츠카로 시작하여 시장을 씹어먹은 전략이 생각난다. 한식은 윗등급의 파인 다이닝에서도 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에 널리 닿을 수 있는 3.99 달러의 김밥을 필두로 50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한식 까지. K-Food 가 보편화 되며 이제 한국을 모르는 사람보다 한국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질 시대가 오고 있는 듯 하다. (이미 그런가?)
한국 음식의 세계화와 대중화 어떻게 가능했을까?
1. 한식을 세계화 시키려 오래전부터 노력한 사람들
십몇년전 쯤일까 나라에서 K-Food 를 알리겠다고 어떤 기관을 창립했었다. 당시 비빔밥을 알리겠다고 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당시의 나는 ‘과연 그게 될까’, ‘안될 것 같은데’, ‘무모한 도전 아닌가?’ 란 생각을 했었다. 굉장히 부정적이고 회의적이었다. 안될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몇년인가? 십몇년인가? 지난 지금은 어떤가. 구글 올해의 검색어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안된다고 믿은 나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지만, 된다고 믿은 그들은 결국 그들의 목표를 이뤄냈다. 그들이 이뤄낸 결과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쨋든 다양한 요소들의 합작으로 그들이 원하는 바는 이루어졌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2. 한국어 그대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
또한 감사한 것은 우리 말 그대로 사용하는 운동에 성공한 것이다. 내 기억에 아주 오래전에는 뭔가 번역을 해서 홍보를 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사람들이 고유어 그대로로 홍보를 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일본의 스시가 일본말 그대로 쓰여지듯이말이다. 그간 어떠한 일들이 있어왔는지 모르지만, 결국 성공해내지 않았나. 세계 사람들은 김밥을 김밥이라 부르고, 비빔밥을 비빔밥이라 부르며, 돼지곰탕을 돼지곰탕이라 부른다. 먹방도 먹방이라 부른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존경하고 싶다.
3. 결국은 각 분야의 개개인의 꿈들이 모여 이뤄낸 결과
나는 문화적 영향을 미치게 된 개개인의 꿈들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까 싶다. BTS로 대표되는 K-POP 의 높아진 위상, 넷플릭스의 수많은 고품격 한국 컨텐츠들. 이러한 문화적인 컨텐츠들로 한국을 계속 접하다보니 한번 시도해보게 되고, 처음엔 어색하더라도 점점 익숙해지게 되는 과정. 그런것 아닐까?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 되고자 한 사람들, 멋진 컨텐츠를 만들고자 한 사람들, 한식을 세계화 시키고자 한 사람들, 먹방에 전념한 사람들. 개개인들의 꿈들이 이뤄지며 이것이 한데 모여 멋진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4. 개인적인 반성
나는 ‘안될거라’ 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왜 안된다고 생각했던가. 그 오랜기간동안의 나의 태도를 반성한다. 나같은 사람만 있었다면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나다운 것을 갈고 닦아, 세상에 내보이고, 아주 오랫동안 꾸준한 노력끝에 결국은 이러한 결과를 낸 사람들을 존경하고 감사한다. 나를 반성하고, 그들을 닮고 싶다. 세상은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해내는 곳이다. 그걸 다시한번 느꼈다.
2024년은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넓고 깊게 닿게 하는 해일 듯 하다. 한국인으로써 매우 기대가 된다. 나 또한 어떤 방면에서라도 한 몫을 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